• 활기찬 경남 행복한 장애체육인
  • 활기찬 경남 장애체육인
  • 활기찬 경남 행복한 장애체육인
  • 활기찬 경남 행복한 장애체육인
  • 활기찬 경남 행복한 장애체육인

보도자료

[거제신문 7/9] 절망을 딛고 희망을 꿈꾼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9,099회 작성일 12-07-13 09:33

본문


절망을 딛고 희망을 꿈꾼다
경남장애인생활체육대회 당구 금메달리스트 제영준 씨
newsdaybox_top.gif\" 2012년 07월 09일 (월) 10:05:14 박근철 기자 btn_sendmail.gif\"uni-guest@hanmail.net newsdaybox_dn.gif\"

77년 사고로 지체장애 4급 판정…장애 이겨낸 감동 드라마

  \"\"  

\"욕심요? 없습니다. 더이상 아프지 않고 현재 건강만 유지한다면 바랄게 없죠.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게 행복입니다. 내가 숨쉬고 있는 하루하루에 감사할 뿐입니다.\"

빛나는 금메달을 손에 쥐고 머쓱한 웃음을 지어보이는 제영준(54) 씨.

제 씨는 지난달 29일 열린 제15회 경상남도장애인생활체육대회 당구 종목에서 자랑스런 금메달을 목에 건 주인공이다. 그렇게 많지 않은 금메달을 획득한 거제시가 종합 4위를 차지하는데는 제 씨의 금메달이 큰 몫을 한 셈이다.

제 씨는 한 쪽 다리가 불편한 지체장애 4급 장애인이다. 고등학교 2학년이던 지난 77년 양수기 폭발 사고로 다리를 크게 다쳤다.

\"절단만 안했을 뿐이지 없는 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왼쪽 무릎이 전혀 굽혀지지 않아 걷는데 불편한 점이 많죠. 가장 힘든 점은 통증이 심하다는 겁니다. 혈액순환이 잘 안되다보니 근육통은 물론 심한 몸살을 앓을 때가 많죠. 후유증을 겪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듭니다.\"

사고 당시의 생각에 잠시 잠겨서였는지 제 씨의 표정이 이내 어두워졌다. 양수기 폭발사고로 제 씨는 왼쪽 다리를 평생 못쓰게 된 \'장애인의 삶\'을 걷게 됐다. 병원에서 1년을 생활하고 겨우 고등학교를 마쳤지만 그 때는 \'절망과 포기\'라는 단어만 머릿속을 맴돌았다고 한다.

  \"\"  

\"원래 공무원이 꿈이었죠. 고등학교를 겨우 마치고 공무원 시험 준비를 했지만, 당시는 장애인에게 문이 크게 열려있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꿈을 접을 수 밖에 없었죠.\"

뜻하지 않은 사고로 제 씨의 꿈은 바뀔 수 밖에 없었다. 제 씨는 결국 양복 만드는 일을 배우기 시작해 8년 가량 양복점을 운영했다. 하지만 그 일도 기성복 매장 때문에 계속 이어갈 수가 없었다.

그렇게해서 시작한 게 당구장. 제 씨는 지난 96년 지금의 위치에 \'애니콜 당구장\'을 열어 지금도 운영하고 있다.

\"당구장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당구에 취미가 생기더군요. 짬짬이 친다는 게 어느새 \'도사\' 수준이 됐죠. 300점 정도 치는데 사람들이 쉽게 믿지를 않아요. 점수를 너무 낮춘다고…하하하.\"

이렇듯 만만치 않은 당구 실력을 갖춘 제 씨가 장애인체육대회와 인연을 맺은 것은 어떤 연유였을까?

\"3년 전인가 협회에서 전화가 왔더군요. 장애인체전에 한 번 나가보라고…. 그래서 망설임 없이 그냥 나가봤는데 경남대표로 뽑혀 전국체전까지 나가게 됐죠. 2인 1조로 팀을 이뤘는데 그 때 6개 종목을 싹쓸이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제 스스로 놀라울 뿐이었습니다.\"

제 씨는 모두 3개 대회에서 입상했다. 올 전국체전 대표선발전에서는 아쉽게도 고배를 마셨다고 한다. 기회가 된다면 계속 각종 대회에 출전해 좋은 성적을 거두고 싶다는 \'욕심\'도 숨기지 않았다.

긍정적이고 활달해 보이는 제 씨도 장애인 정책에 대한 쓴소리는 잊지 않았다.

  \"\"  

\"지난 85년 장애등급 판정을 받았고, 이후 몇차례 등급 수정을 신청해봤지만 녹록치 않았습니다. 3급과 4급의 혜택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인데 장애등급 판정 기준이 너무 모호합니다. 멀쩡한 사람이 3급을 받는 반면에 나처럼 붙어만 있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다리를 가진 사람이 4급을 받습니다. 꼭 혜택을 봐야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장애등급 판정 기준은 바뀌어야 합니다.\"

불편한 몸에도 제 씨는 왕성한 사회활동까지 뛰어들었다. 장평동 자율방범대 창설 멤버로 4년 가량 열심히 활동을 했고, 그 뒤에도 청소년지도위원으로 2년 가량 활동하는 등 몸이 허락하는 대로 사회활동을 펼치고 있다.

\"자존심이 굉장히 강합니다. 때문에 지기 싫어하죠. 그러다보니 욕심도 많고, 이것저것 많은 시도를 해보려고 하죠. 건강만 이대로 유지된다면 좋은 일도 많이 해보고 싶습니다.\"

절망과 포기라는 단어 앞에서 희망과 도전이라는 꿈의 나래를 펼친 젊은 20대가 어느덧 50대 중반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아쉬움과 고통의 순간들도 많았지만 앞을 내다보는 그의 눈빛에는 작은 평화가 깃드는 듯 했다.

포기하지 않고 매순간 최선을 다해왔기에… 자신감 넘쳐 보이는 제 씨의 모습에서 \'장애\'라는 단어는 어느새 지워지고 없었다.